
먼저 착한버스 블로그를 사랑해주셨던 많은 분들께 깊은 양해를 구합니다.
여러 곳에 흩어져있던 굿네이버스의 블로그를 한데 모아
더욱 풍성하게 여러분들과 소통하고자 http://gniblog.org 주소로 공식블로그를 오픈하였습니다..^^
착한버스에서 나누었던 따뜻한 사랑과 희망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
http://gniblog.org 이 곳에서 쭈욱, 더 훈훈하게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_________^
고맙습니다.

찬바람이 매서운 이맘때면 학교끝나기가 무섭게
손 호호 불며 집으로 쌩하니 달려가곤 했어요.
뜨뜻한 방바닥과 따스한 엄마품이 반기는 우리집은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거든요.
하지만 소정이는..
집에 가면 시려움이 두배 더해집니다.
포도빵 2009/12/14 1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정이네 가족이 올 크리스마스에 따뜻한 희망산타를 꼭 만나길 빌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씩씩하게 예쁘게 자라길...
LED light
2011/06/2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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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듯한 단칸방.. 희망을 지피는 소정이 세자매
지구를 달리다 2009/12/14 15:52
찬바람이 매서운 이맘때면 학교끝나기가 무섭게
손 호호 불며 집으로 쌩하니 달려가곤 했어요.
뜨뜻한 방바닥과 따스한 엄마품이 반기는 우리집은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거든요.
하지만 소정이는..
집에 가면 시려움이 두배 더해집니다.
정신지체3급 장애인 엄마와
힘겨운 하루하루를 달래려 술에 자꾸 의지하게 되는 아빠..
엄마아빠품에 폭..안겨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지만,
11살의 소정이에겐 15살 언니와, 8살의 어린 동생이 가장 큰 버팀목이랍니다.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한 오래된 흙집
다섯명이 한데 모여 앉기만도 턱없이 비좁은 단칸방..
한참 자라나는 여자 아이들이 지내기엔 너무나 삭막하고 불안정하기만 합니다.
목욕시설이 마땅치 않은 소정이네는
마당 한복판이 욕실이랍니다.
겨울이 되면 목욕하기 싫다는 동생과 한바탕 씨름을 해야해요.
"저 얼굴에 때 좀 보래요~~!!" 친구들이 매일 놀려대지만..
겨울바람속에서 몸에 시린 물을 끼얹는 일은 11살 소정이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그나마 유일한 세면시설인
마당의 수도꼭지가 얼어버리면 씻을 물조차 구할 수 없기에..
소정이는 설겆이를 갖마쳐 빨갛게 언 손으로 동생을 재촉합니다.
저녁때가 다가오면 소정이는 바빠집니다.
부지런히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온가족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거든요.
튀어오르는 불꽃과 매캐한 연기에 눈이 맵긴 하지만..
그래도 정성스레 준비한 밥을 함께 나눌 가족들이 있어 행복한 시간이랍니다.
"우와 전기가 들어왔어요!"
어린 동생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방안을 활보합니다.
며칠전, 드디어 소정이네 전기가 들어왔거든요.
이제는 밤에도 숙제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해요! 소정이도, 언니도 활짝 웃어봅니다.
소정이의 소원은 근사한 패밀리레스토랑에서의 맛있는 외식도..
찬바람을 막아줄 예쁜 빨간색 점퍼도 아니랍니다.
“방이 하나 더 생겼으면 좋겠어요..공부하고 싶어요”
쓰러질듯한 단칸방에서 씩씩하게 이겨나가는
human hair half wigs
2011/08/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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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이네 가족이 올 크리스마스에 따뜻한 희망산타를 꼭 만나길 빌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씩씩하게 예쁘게 자라길...
fat burner
2011/11/13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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どのような有用な記事は本当に再びこの時間と時間に戻って来るといことだ。おかげで.
professional dissertation writers
2012/01/2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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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를 향하고 찍는'카메라는 수동으로 설정하실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있는 수동 초점을 허용
천사의 얼굴을 닮은 무구의 사람들도당연히 누려야 할 생존의 권리,
그리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희망은,
전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무구의 사람들도 그 희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하지만, 천사의 미소를 가진 사람들.
더 이상 고통스러운 겨울을 맞이 하지 않기를,
노력하는 만큼 얻게 되는 기쁨을 알 수 있게 되기를...
굿네이버스는 앞으로 이 무구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식량지원과 지역개발사업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천사를 닮은 무구 사람들이,
천사처럼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도록 계속해서 관심보여주세요~

<위의 배너를 클릭하면, 네팔 무구지역 주민들처럼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이웃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Flour Mills
2011/09/2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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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주 공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익한했다
Christmas Decorations
2011/09/2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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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도서만 정보를 제공뿐만 아니라 매우 예술되지 않습니다
8월 15일은 한국의 광복절.
그렇다면 9월 15일은?
바로 과테말라의 독립기념일입니다.
독립기념일이 있다는 말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립되기 이전의 아픈 역사,
독립하기 위해서 투쟁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사실 과테말라의 식민지 역사는 한국보다 훨씬 깁니다.
한때는 마야문명이 번영했던 이 땅도 16세기부터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근 3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됩니다.
안티구아라는 도시에는 지금도 그 때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요.
한국에서 광복절을 맞을 때에는 그저 휴일이라서 좋아했었지요.
역사에 대한 부분은 까마득하게 잊고, 때로는 국기를 게양하는 것조차도 잊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과테말라에서는 독립기념일이 휴일일 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축제로 축하하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횃불을 든 채로 거리를 달리는 사람들도 많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분장을 하고 거리 행진을 하기도 해요. 작은 학교인데도 행진 규모가 커서 저는 정말 놀랐답니다.
독립기념일을 맞아, 개구쟁이 산초는 멋진 신사가 되었습니다.
턱수염이 정말 강렬하죠?
하늘하늘 날개 옷을 입은 요정, 멋지게 수트를 차려 입은 꼬마 신사, 다들 한껏 차려 입고 거리를 행진할 준비를 마쳤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해요.
교실에 앉아있는 모습에서도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읽어낼 수 있지만,
이렇게 분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끼가 넘치는 것 같아요.
카메라를 보면 바로 포즈가 나온답니다.
이런 개구쟁이들이 잔뜩 모여서 행진을 하는데다 길가에는 구경 나온 시민들도 잔뜩 몰리고, 더운 날 행진하는 아이들에게 시원한 음료수와 간식을 먹이려고
부모님들까지 나와있는 바람에 온 거리가 북적거렸답니다.
꽤 넓은 4차선 도로인데 차량을 통제하고
저는 굿네이버스가 후원하고 있는 ‘Nuestra Realidad’이라는 학교의 행진을 따라갔는데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런 행진을 한다고 해요.
앞장서 가던 악대가 갑자기 더 큰소리로 힘차게 연주한다면,
길에서 다른 학교의 행진 행렬을 만나서 그 학교에 지지 않으려는 거랍니다.
혹시 과테말라 국기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행진의 말미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퍼레이드카를 파란색과 흰색 풍선으로 꾸민 것은 과테말라 국기가 파란색과 흰색으로 되어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1821년 9월 15일이 독립한 날이라고 국기에도 쾅 새겨 넣었답니다.
그만큼 독립이 절실했었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국기 한가운데 있는 새가 보이시죠?
저 새는 과테말라 화폐 단위 이름으로도 쓰이는 ‘께찰’이라는 새에요.
마야의 마지막 왕자와 관련된 전설도 있다지요.
한국을 떠난게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과테말라에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hola’하고 인사하는 것에도 익숙해졌고, 점심 식사로는 현지 음식 한 그릇 뚝딱이고요.
이 나라의 아이들을 어느새 ‘우리’ 아이들이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제 자식밖에 안 보이는 엄마처럼 우리 아이들이 제일 예쁜 것 같고 제일 똑똑한 것 같고요.
정말 다른 학교의 행진을 봐도 우리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예뻐 보이지가 않더라니까요.
이곳의 독립기념일을 거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겪은 것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광복절이든 독립기념일이든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과테말라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기회였어요.
친구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을 찾으면 더 친해진 것처럼 느끼는 때가 있잖아요.
저에게는 이번 독립기념일 행사가 그런 기회였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얼마나 더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친구가 될 수 있을지 기대가 되네요.
팔레스타인 난민촌, 그 속 깊은 이야기(I) 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
1.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역사..
- 벌써 정착 3세대 :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그리고 변해가는 정체성
UN 학교에서 교육되는 중동사 수업의 교재에는 팔레스타인만 존재할 뿐 이스라엘 지도는 나오지 않는다.
또한 가정 내에서 부모님을 통해 고통의 역사에 대한 교육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고향을 떠나온지 벌써 60년,
부단히 정체성과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난민촌 길거리에서 만난 한 청년과 대화 중에 예상 외의 말을 들었다.
"나는 요르단 사람이에요."
요르단에는 "Wasta" 라 불리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어서,
어떠한 때는 경쟁에 있어서 실력 보다도 혈연과 인간관계가 다 우선시 되기도 한다.
낮은 인구 구성비, 낮은 교육률, 낮은 사회적 지위.
한정된 자원 하에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경우는 으레 거쳐야하는 장벽이 있다.
현실의 벽 앞에 많은 청년들이 요르단인임을 인정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팔레스타인 가정 내에서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가장격인 할아버지는 "Desire of Return, Right of Return" 에 대해서 이야기하시지만
반면에 빈곤한 현실속에서 가족들이 입에 풀칠이라도 할수 있게 유지해야하는 가장들(아버지, 손자)은 어쩔 수 없이 삶의 유지를 위해 요르단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
뉴스를 통해 멀찌감치 바라보던 물리적 고통 말고도 내부에는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니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가슴이 아프고 쓰라린 현실이다.
2.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내가 방문한 난민촌에는 2개의 NGO가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중 내가 방문한 하나가 팔레스타인 자생 NGO였다.
큰 고통을 받는 동포들을 지켜볼 수가 없어서 미국에서 교사로 일하던 팔레스타인 사람이
1960년대 난민촌으로 넘어와 NGO를 세웠다고 했다.
아이들의 유치원에서부터 청소년 영어, 컴퓨터 교육.
그리고 난민촌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질병 예방교육과 재봉기술, 공예교육과 같은 직업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들이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하니 든든하고 좋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더욱 든든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공적원조 기관인 KOICA 와
주요르단 호주대사관 등에서도 난민촌 개발을 돕고 있다고 한다.
굿네이버스 같은 많은 국제개발구호NGO들도 이런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다수의 지역민들도 개발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스스로의 발전과 개발을 이끌어
지속가능한 개발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 우리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결정 짓는 핵심은 아이들 교육에 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한 과정이지만,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이 팔레스타인을 위해 일할 날이 올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요청합니다."
떠나기전 마지막 NGO 대표와의 아주 짧았던 인터뷰에서 희미하지만 기대할만한 희망을 보았다.
이렇게 고통 받은 이웃이 내 곁에 있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할까?
3. 나, 그리고 우리는?
중동의 가장 소외된 이웃, 나에게 있어서는 팔레스타인 난민은 가장 힘든 환경에 살아가시는 분들이었고,
최소한 여기 있는 동안 꼭 만나봐야 할 분들이었다.
쉽지는 않았던 이번 여행을 통해 나눔의 가치를 몸으로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마음이 참 뿌듯하다.
자원 활동을 하면서 마음에 세웠던 중심은 “사랑함” 이었다.
“사랑하자. 그리고 함께 고통하자.”
지역사회의 외부인으로서 기부자, 나누는자 의 역할 뿐만 아니라
더욱 나아가 지역 사회의 내부인으로 살고 싶었고,
이집트 자원봉사자로서 이집트의 빈곤층 사람들의 고통에 중심에 서서 함께 지내길 원했고
또 생각을 넓혀 그 너머의 소외된 이웃을 찾아 이해하고 싶었다.
지역민들 삶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고통이 있다면 함께 고통하고 공유하는 것.
이상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청년으로서 감히 도전하고 노력해볼만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팔레스타인 난민촌 방문도 “함께 고통하자.” 생각의 동일 선상에 있었다.
이번 방문으로 조금이나마 이분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이제는 팔레스타인의 일이 더 이상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게 앞으로 나눔의 범위를 넓혀가며 살아가는 것, 주변 분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팔레스타인 이야기하는 것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들이 팔레스타인에 존재하는 이상과 현실을 조정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기꺼이 감당해야 할 자원봉사자, 자원활동가로서의 역할과 그리고 이후의 나의 삶들이
내 이웃을,
특별히는 내가 잘 알고 있는 이집트, 팔레스타인 분들을 돕기 위한 좋은이웃의 삶 이길 소망해본다.
참고자료 : A profile of Poverty for Palestine Refugees in Jordan : the cas of Zarqa and Sukheh Camps, Ibrahim Hejoj, Oxfod Universty Pres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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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기사를 사랑
강인아 2010/11/02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좀 가져 갈게요
사진좀 가져 갈게요
に共有していただき感謝するように私達と共有を続けてくださいその今、彼らはあなたのpost.Iで十分なリソースを見つけることについて、検索、多くの人はとにかく自分のブログへの参加をご希望です
아주 좋은 기사. 그냥 구글 번역기를 통해 읽어보세요.
블로그도서만 정보를 제공뿐만 아니라 매우 예술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유용한 블로그를 게시 축하드립니다.
블로그가 읽고 이해하기 쉽게 그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나는 정말이 사이트를 찾는 격려했다. 이 유익하고 유용한 읽어 주셔서 감사 싶었어요.
初めてでも安心して使えるサイト
좋 은 정보 머릿속 에 기억 했 다
나는 정말이 사이트를 찾는 격려했다. 이 유익하고 유용한 읽어 주셔서 감사 싶었어요.
This is something that is really amazing and interesting to me to say the least.
아주 좋은 기사. 그냥 구글 번역기를 통해 읽어보세요.
좋 은 정보 머릿속 에 기억 했 다